2010년 2월 3일 수요일

담론05. 푸코의 담론이론, JSA, 지식노동의 목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담론01 ~ 04까지 '담론'이 뭔지, 그 개념에 대해서 찾아보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담론02에서 tzara님이 댓글로 글을 하나 추천해주셨어요.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지면서 읽고 이 글에 나온 내용을 간단하게 그림으로 표시하고 코멘트를 달아 보았습니다. 역시 손으로 그리니까 편하네요.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 부탁드릴게요. 수정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요 ^^


제도, 담론의 주체, 담론, 권력, 지배당하는이

  • 푸코가 의미하는 담론은 ... 전문 지식을 (재)생산하는 제도 영역에서 쓰이는 전문적 언어 양식..
  • .. 담론은 담론 주체에 의해 활용되면서 힘을 발휘한다..
  • 담론 주체란 각 제도 영역에서 담론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소유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채워질 수 있는 공간적 지위..
  • 병원이란 제도와 의사의 경우... 의사가 의학적 처방을 내리면 일반인들은 그의 말을 따르게 된다. .. 의학 담론 메커니즘에서의 주체 기능 자격 때문에 그의 말을 따른다..

'억압' 또는 '정당한 거래'

병원이라는 제도내에서 의학 담론이 있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에게 배를 째게 만드는 권력을 가지는데요.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관계는 '억압'도 될 수 있고 '정당한 거래'도 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의사들이 뭉쳐서 환자들을 골려먹자라고 담합같은 것을 하면 이 관계는 '억압'이 될 것이고, 의사들이 건전하게 서로 경쟁해서 환자들에게 적정한 가격에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이 관계는 '정당한 거래'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담론과 권력 - 묻지마! 이제 궁금하지도 않지?
  • 담론은 권력을 만들어내고, 권력은 다시 담론을 재생산함으로 권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담론과 권력이 연대하게 되는 것이다...
  • 담론 자체가 아주 당연시 되어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권력이 하는 일이다.

하나의 영역만을 놓고 보면 먼저 생기는건 담론같지만, 담론은 권력을 가지게 되고 그 권력이 기존 담론을 지지하는 담론을 생산해 낸다고 이해했는데요. 결과적으로 담론도 계속 많아지고, 권력도 계속 커지게 되는 거겠지요? 이 과정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가 않고, 추상적으로만 들리네요. 담론과 권력이 서로를 키우는 과정을 잘 나타내주는 예가 있으면 좋겠어요.

처음 생겨난 담론, 권력이 키워주기 전의 담론과 큰 후의 담론은 차이가 클 텐데요, 커진 담론은 무서운 존재 같습니다. 당연시 여긴다는 것보다 강력한게 또 있을까요? 별도로 시키지 않고도,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고도 많은 일을 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요.

담론을 무너뜨리는 세력

  • 담론이 경우에 따라서 억압적 도구로써.. 저항적 도구로써..
  • 헤게모니 세력의 담론적 힘이 작용하는 곳에는 언제든지 그 힘에 대항할 수 있난 반헤게모니 세력의 담론적 힘('대항 담론') 또한 가능하다는 푸코의 권력 이론의 요점..
  • 전문지식이 보편화되면 권력이 해체된다... (예: 종교개혁)

벌써 그림에서 이상한 부분이 눈에 보이네요. 본문에서는 전문 지식이 보편화 되면 권력이 해체된다고 했고 그 예로 성서가 번역되면서, 라틴어를 공부한 계층이 독점하던 성서지식이 보편화되고 그 결과 카톨릭의 권력이 해체되었다고 나왔는데요. 윗 그림에서는 마치 헤게모니와 반헤게모니세력이 충돌했는데, 반헤게모니가 이겨서 그렇게 된 것처럼 그렸어요. 성서를 번역한 그룹이 반헤게모니 그룹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성서지식을 특정 계층이 독점하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그룹이지 않았을까요?

 여기에 지식 노동의 의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이 어떻게 담론을 만들어내는가를 감시하고 그 담론을 어떻게 밝혀내고 공개하고 해체하느냐에 권력의 반대편에 서 있는 지식인의 노동인 것이다. 지식 노동을 통해 밝혀지는 담론과 권력과의 연관성을 까발리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담론과 권력의 얼개 속에 갇혀 있는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지식 노동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에서 얘기하는 중요한 내용같습니다. 지식 노동의 의의는 주류 담론을 해체하는 것, 그리고 권력을 해체하는 것. 담론과 권력의 얼개 속에 갇혀 있는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하는 것. 이렇게 한 예로 영화 JSA를 들었고요.

그럼 의사의 권력을 해체해야 할까?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권력이란 것은 무조건 해체의 대상인지, 권력은 무조건 일반인을 억압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만약에 그렇다면, 이 저항담론도 헤게모니가 되면 일반인을 억압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권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느낌, 찝찝한 느낌이 드는데요, 연상되는 표현만 해도, '권력을 거머쥐었다', '권력욕에 불타서', '권력, 한번 맛을 보면 ..', 등등 상쾌한 느낌 보다는 음침하고 칙칙한 표현이 먼저 떠오릅니다.

전문적인 제도의 영역에서 '담론'이란게 생기는 거라면, 담론 자체가 안 생기게 하기는 어려운 것 같고요, 전문영역이 필요하기는 하니까요. 그런데 푸코의 말에 따르면 담론은 힘을 가지게 되니까, 힘 자체가 안 생기게 하는 것도 어려운 것 같아요. 이 '힘'이라는 것에 음침한 느낌이 떠오른 다는 것도 제가 어떤 '담론'에 지배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힘'이라는 것 자체는 중립적인 것일텐데요. 그냥 생겨나는 거니까요.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힘'을 가지고 '억압'을 하느냐 '정당한 거래'를 하느냐가 아닌가 합니다. 처음에는 글을 읽고서 '지식 노동의 의의는 기존 담론을 해체하는 대에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럼 기존 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의사의 권력을 해체하면 누구에게 의학적인 조언을 구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을 해보니까, 지식 노동의 의의는 주류 담론이 가지게 된 권력을 가지고 '억압'을 하는지 '정당한 거래'를 하는지 감시하는 것이 아닌가, '억압'을 하는 거라면 그게 부당하다는 지적을 하고 '정당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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