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4일 목요일

그 단골카페가 편했던 이유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윗 글에서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결심은 한 번에 한 개만 하는 게 더 낫다.'라고 이해했는데요, 그 이유는 결심하는 역할을 하는 전두엽 피질이 매우 할 일이 많고 빨리 피곤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In fact, one study by researchers... found that just walking down a crowded city street was enough to reduce measures of self-control, as all the stimuli stressed out the cortex. (대략-> 도심의 거리를 걷기만 해도 전두엽 피질은 매우 피곤해서 자기통제력을 잃어요.)


윗 글에서 소개한 기사(뇌를 탓하세요)에서 '도심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기만 해도 전두엽 피질은 매우 피곤해한다는 내용'이 잠깐 언급되었는데요. 저는 전두엽 피질에 대한 이런 설명을 읽으면서 제가 좋아했던 카페에 대해 든 생각을 써보았습니다.


그 단골카페가 편했던 이유

홍대에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회사 끝나고 집에서 옷 갈아입고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어서 참 좋았다. 그 카페 2층의 발코니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평소에는 잘 듣지 않던 재즈나 라틴 풍의 음악이 길 건너편의 레코드샵에서 들려왔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져서 속에 뭉쳐 있던 생각을 술술 글로 쓸 수 있었다. 커피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그 카페에 갔다. 위에서 소개한 기사를 읽으면서 이 카페가 왜 나에게는 참 편안한 곳이었는지 생각해 보게되었다.

이 컬럼에서 얻은 힌트에 따르면 그 카페는 내 전두옆 피질에 자극을 덜 주었던 게 아닌가 싶다. 굉장히 빨리 피로를 느끼는 이 피질은 뭘 봐도 피곤해하고, 뭘 들어도 피곤해하고, 숫자 몇 개를 더 외워도 피곤해하고, 하여튼 온갖 자극에 민감해서 금새 피곤해져버리는 어찌보면 항상 과로에 시달리는 불쌍한 한 존재인데, 이 카페에서는 그나마 다른 곳에 비해서는 자극을 덜 받았던 게 아니었을까 한다.

'단골'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그 카페에 가면 마음이 참 편안했다.

내가 시킬 커피가 뭔지 아니까 메뉴판도 볼 필요가 없었고, 인테리어도 눈에 익어서 편했고, 여기는 사이즈 주문을 어떻게 하는지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었고, 어디 앉을 지도 알기 때문에 바로 거기로 가거나 그 자리에 누가 있으면 잠깐 다른데 앉아서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그 자리가 비면 옮기면 되었다.

카페에 혼자서 갔으니 나에게 말거는 사람도 없겠다, 발코니에 있으니 실내의 시끄러운 대화소리도 잘 안들리겠다, 길가에 차가 지나가는 소음이 있었지만 길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라틴풍의 음악소리에 묻혔다.

음악...

나는 음악을 참 좋아하는데, 공부할 때나 책을 읽을 때에는 음악을 안 튼다. 신경이 음악에 쏠려서 집중이 잘 안되기 때문이다. 책을 펴놓고 좋아하는 CD를 틀어놓으면 어느새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내가 좋아하는 악기 연주의 등장을 짠하고 혼자서 맞추고 혼자서 좋아하는 것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 같다. 그러니 공부가 될 리 없고 책이 읽힐 리 없다. 반면에 재즈나 라틴 음악은 내가 여태 한번도 빠져든 적은 없는 음악이다. 싫은 건 아닌데 마르고 닳도록 CD를 들었던 앨범이 없어서 막 따라부를 정도로 알고 있는 음악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 카페의 길 건너편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소리는 나에게 엉덩이를 들썩이게하는 흥분제 역할을 하지는 않으면서도 도로의 소음을 묻어주는 역할은 해주었던 게 아닐까. 무슨 음악인지는 모르면서도 나는 그 자리에 앉으면 그런 음악이 들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내 전두엽 피질도, 그 음악이 들리면 원래 들었던 거려니 하면서, 그러나 지나치게 빠져들지는 않으면서, 자극을 덜 받았던 게 아닐까. 자극을 덜 받으니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있으니까 내 마음을 글로 풀어내는 데 집중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기 때문에 그 카페에 갔던 건 아니지만 몇 번 가보니 내 몸은 거기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거나, 혼자 있고는 싶은데 집안이 답답하면, 나는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그래서 더 좋은 그 카페로 달려가 마음의 위안을 얻고는 했다. 이렇게 자주 들락거리다보니, 쿠폰으로 공짜 커피도 몇 잔이나 마셨다. 어느새 나는 그 카페의 자칭 단골 고객이 되어 있었다. 그 카페는 체인점이었고 컸기 때문에 나는 주인이 알아보지 못하는 단골고객으로 남을  수 있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한 이후로 더 이상 그 카페에 가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나는 그 카페를 가끔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전두엽 피질에게 그 카페는 좋은 친구였던 걸까.

댓글 3개:

  1. 전두엽 피질이라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단어와 단골까페의 추억이 같은 공간에 있으니 참 묘한 느낌을 줍니다. ㅎㅎ



    저도 밖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는 공간 분위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땐 까탈스럽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그렇다고 럭셔리한 비싼 가게를 가거나(그럴 형편도 아니고. ㅎㅎ), 만나는 사람 그 자체보다 중요하다는 건 전혀 아니지만요. 까페는 대학을 다닐 때를 빼고는 점점더 갈 일이 없어지는데, 문득 대학 다니던 그때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아득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던 까페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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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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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민노씨 - 2010/01/16 21:55
    추억할만한 공간이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추억할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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