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0일 수요일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 읽은 것과 생각한 것

오빠가 읽고 있는 교육철학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말로만 듣던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서 설명한 글이었는데, 읽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읏, 책 이름이 뭐더라. 무슨 Philosophy of education 누구누구 그런거였는데)에 나오는 동굴의 우화를 그림으로 표시해보고, 이해한 내용, 궁금한 내용 등을 적어보았다.



3번 - 쇠사슬에 묶인 죄수

지하동굴에 갇혀 살고 있는 죄수, 자세히 보면 발목이 쇠사슬(chain)에 묶여 있다.


13번 - 쇠사슬

죄수를 묶은 쇠사슬은 무지와 무관심(ingorance, apathy) 등을 의미한다.


14번 - 쇠사슬을 풀어낸 죄수

지하동굴에 갇혀 살고 있는 죄수 중에는 쇠사슬을 풀어내는 경우가 있다. 죄수가 쇠사슬의 존재를 어떻게 인지하는지 궁금하다. 분명히 뭔가가 죄수에게 '쇠사슬'은 걸리적거리는 것이다라고 신호를 주는 힘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이데아의 세계에서 전해지는 빛의 온기일까?


14번은 쇠사슬을 풀고 어떤 힘인가에 이끌려 위로 올라간다. 여기서 궁금한 점, 왜 죄수는 하필이면 "위"로 올라가려고 할까? 철학이라는 단어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데, 이 죄수의 안에는 지혜에 대한 사랑, 이데아세계의 최고의 선(The Good, 9번)에 대한 어떤 사랑의 마음, 사모하는 마음이 있나보다. 이 마음을 누가 심어줄까? 이데아 세계의 햇빛일까? 이 온기는 4번 죄수에게도 미치고 14번 죄수에게도 똑같이 미칠텐데 왜 4번 죄수은 그 마음이 커지지 않고, 14번 죄수은 그 마음이 커진 것일까? 의문 투성이다. 4번 죄수와 14번 죄수의 차이는 무엇일까? 플라톤은 자신의 이상사회의 사람들은 세 그룹(three classes) 으로 분류했다. 일하는자, 군인, 다스리는자. 교육을 시켜서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계속 공부를 시키고 철학 공부를 시켜서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스리는자는 어떤 사명감으로 나라를 The Good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4번 죄수와 14번 죄수의 차이는 아마도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12번 - 정신, Mind, Soul, Self, Conscious ...

죄수의 위에 정신을 표시했다. 정신으로 죄수는 변증법을 행한다.


11번 - 위로 열심히 올라가는 죄수

여튼, 14번 죄수는 어떤 마음에 이끌려, 어떤 무언가에 이끌려 올라간다. - 이것을 뒤에 나온 Augustine, 어거스틴은 faith, intuition(신념, 직관)으로 표현한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거스틴은 알기 위해서는 그 전에 믿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는 종교적인 신념을 얘기하긴 했다. 신을 알기 위해서는 그 전에 신을 믿어야 한다고. 신기한 건, 이제까지 종교적인 신념이나 믿음을 직관이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 올라가는 동안 계속 아래로 잡아당기는 힘에 대한 생각은 아래 2번에서 추가했다. 플라톤은 이렇게 가파른 동굴벽을 올라가는데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변증법'이라고 했다. 즉 이성으로 변증법적인 대화를 하면서 이데아 세계를 향해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변증법은 dialectic. 그렇다면 변증법이란 거는 동굴의 벽을 찍어서 그것을 잡고 올라갈 수 있는 어떤 도구 정도?


8번 - 동굴을 벗어나 이데아 세계에 진입한 죄수

동굴(현실세계)과 이데아세계의 경계에 대한 생각은 아래 2번에 대한 얘기에서 추가했다. 죄수는 이 온기의 원천인 태양을 직접 느끼고 두 눈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성찰한다. 아마도 무한한 기쁨, 자유로움, 충만함 등을 느낄 듯.. 이것으로 해피엔드~ 로 끝이날 것 같은데, 플라톤은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7번 - 동굴의 친구들을 떠올리는 죄수

이데아 세계에서 한없이 기쁨을 느낀 죄수는 동굴에 있을 적의 친구들을 떠올린다. 내가 본 것을 알려줘야겠다. 실제로 우리는 쇠사슬에 묶여서 실체도 못보고 그림자만을 보면서 살아가는 무지하고 불쌍한 존재이다라는 것을 알려줘야겠다. 쇠사슬을 풀고 같이 이데아 세계로 가세~ 라고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동굴로 돌아간다. 석가모니가 열반의 경지에 들었지만, 그대로 열반에 머물지 않고 속세로 돌아와서 가르치는 행위를 했던 것도 그런 비슷한게 아닐까?


음. 그런데 여기서 내가 생각한 것에 모순이 생긴다. 2번에서 아래로 작용하는 힘, 욕망의 힘을 생각했는데, 그럼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는 죄수는 다시 욕망에 지배받게 되는가? 아닐 것 같다. 적어도 중력, 욕망에 지배받는 영역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틀림없을텐데, 돌아가는 죄수는 다시 욕망에 지배를 받는 존재는 아닐 것 같다. 플라톤은 이런 얘길 한다.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이데아를 알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데아가 인간 안에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인간은 인간이데아의 일부를 가지고는 있지만, 인간은 인간이데아 자체는 아니라는 것.. 그럼, 8번 단계에서, 이데아 세계에 온전히 도착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일까? 인간이 인간이데아로 변하는 변화같은..  


6번 - 이데아 세계에서 동굴로 돌아온 죄수

여튼 이데아 세계를 갔다온 죄수와 아닌 죄수를 구분하기 위해서 이데아 세계에 갔다온 죄수는 동굴 벽의 바깥에 표시했다. 그리고, 모순되는 부분은 있지만 어쨌든, 이데아 세계에 갔다온 죄수는 중력의 지배를, 즉 욕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정했다. 문득 든 생각. 이데아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종속되지 않는다고 한다. 늙지도 않고 낡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즉 이데아는 중력의 법칙에도 종속되지 않는다는 의미? 그렇다면 인간이 아닌 인간이데아로 변한 죄수가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4번 - 죄수가 휘두르는 칼

동굴로 돌아온 죄수는 신이 나서 다른 죄수들에게 이데아 세계로 가자고 얘기한다. 그런데 다른 죄수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동굴 안에 계속 살던 죄수들은 그림자 지식, 즉 이데아를 온전히 보지 못하고, 그림자만을 보고 그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것에 대한 지식으로 서로 얘기한다. 한편 이데가 세계를 갖다 온 죄수는 갖다 오는 동안 그림자 지식을 잊어버리거나, 멀리하거나 등등 해서 소위 동굴에 남아있던 죄수들과 얘기가 안 통하나 보다. 여튼, 그래도 이데아를 본 죄수는 다른 죄수들의 상태가 너무 안타깝기 때문에 계속 설득을 하지만 오히려 죄수들은 칼을 휘두른다. 핍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  여기서 궁금한 건, 왜 죄수들은 핍박을 할까? 이데아를 본 죄수들이 본 것을 못 믿겠다면, 못 믿겠다라고 하면 그만일 것을 왜, 핍박까지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도둑이 제발 저린 것일까란 생각도 들고. 이데아 세계를 본 이들은 단지 나와 생각이 다른 거야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핍박하는 것을 보면, 뭔가 '불안'이 느껴진다. 핍박하는 이들은 뭐가 불안한걸까?


5번 - 보호막

죄수가 칼을 휘두르지만, 그래서 현실 세계에서 돌아온 죄수는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기는 하지만, 그 칼은 돌아온 죄수에 닿을 수 없다. 왜냐하면 돌아온 죄수는 이데아이고 칼은 이데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지만, (아마도 이미 이데아인 존재인) 예수님은 죽임을 당할 수 없다. 이데아이기 때문에. 보호막은 이데아와 이데아 아닌 것의 사이에 존재하는 막이라기 보다는, 그 존재가 같은 시공간에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표현해 본 것이다.

9번 - 태양, The Good

이데아 세계의 최고의 선을 의미..


이미 내 생각이 많이 들어갔지만 또 추가하기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에 대해서 처음 접했을 때에는 '동굴'이라고 하니까 지상과 평행한 모양을 생각했는데, 다시 동굴의 우화를 읽다보니까, 쇠사슬에서 벗어난 죄수가 기어올라간다는 대목이 있다. 걸어서 동굴 밖을 나가는 게 아니라,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동굴의 모양이 지상과 평행하지 않고 수직, 즉 지하로 깊이 파혀 있는 동굴을 의미한다. 지하로 깊이 파여있다는 것은 중력이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중력이 있기 때문에, 쇠사슬에서 벗어난 죄수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더 힘들어 진다. 그래서 그림에 추가했다.


1번

세계에서는 중력의 원척이고, 이것이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욕망'의 원천이다.


2번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이다. 중력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 내에 있는 한, 죄수가 위로 올라가는 일은 힘겨울 것 같다. 끊임없이 욕망에 시달릴 것이다.


하지만 중력, 욕망의 원천에서 멀어질 수록, 작용하는 중력의 힘은 줄어들 것이며, 완전히 그 중력의 힘이 미치지 않는 지점, 그곳이 바로 이데아 세계로 진입하는, 동굴의 끝이 아닐까? 생각이 이에 미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지옥이구나. 구원을 받지 않으면 지옥불이 이글이글거리는 불구덩이에 떨어지는게 아니라, 지금의 상황에서 계속 살게 될 거라는 것. 지금처럼 계속 무지와 욕망에 지배당하면서 살게 될 거라는 것. 그게 바로 지옥이라는 것. 블로그에 예전에 썼던 글과, 노트에 쓰다만 이야기가 생각난다.


흠, 원래는 읽은 내용과 생각한 내용을 좀 구분해서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다 뒤죽박죽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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