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4일 일요일

사과

친구도 어려울 때 위로가 되어주는 친구가 있듯이, 노래도 아픈 마음, 고민하는 마음을 달래주고 감싸주는 노래가 있다. 나에게는 셀린 디온의 노래가 그랬다. 그 때, 모두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을 때, 혼자 있고 싶었을 때 내가 달려 갔던 곳은 아파트 꼭대기의 낡은 소파였다. 거기에 푹 파묻혀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따라부르면서 마음을 달랬다.

고교시절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가끔 유명한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무명가수의 노래가 흘러 나올때가 있었다. 그걸 들으면서 나도 나중에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일은 화려해 보이지는 않더라도 좋을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을 꿈이라고 말하고 그 길을 갈 용기는 없었다. 그저 노래를 연습해서 친구에게 들려 주었을때, 친구가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기뻐했을 뿐이었다.

그 때에는 한창 친구들과 노래방에 많이 놀러 다니던 때였다. 가끔 학원에 간다고 해놓고 야자대신 노래방에 가서 실컷 노래를 부르면서 친구들과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015B, 이소라, 박정현, K2, 피노키오.. 이들의 노래는 마르고 닳도록 불렀던 것 같다. 그리고 좋아하는 팝송이 목록에 있으면 꼭 챙겨서 불렀다. 태진에는 있는 노래가 금영에는 없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태진이 더 좋았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도 몇 번 있었다. 대학 때 동네 노래 자랑 예선에 나간다고 트럭 위에서 '소유하지 않는 사랑'을 불렀다. 예선도 통과하고 경품으로 소형 청소기도 받았다. 다만 본선에 나갔을 때 운동장에서 이 노래를 다시 불렀더니 굉장히 썰렁했던 기억이 난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서 아마 노래를 모르셨던 것도 한 이유였던 것 같다.

또 한 번은 종로에서 밀레니엄프라자 지하에서 어떤 노랫소리에 이끌려서 갔다가 나도 즉석에서 신청해서 노래를 불렀다. 대회는 아니었고, 그냥 부르고 싶은 사람은 신청해서 부르는 거였다. 오히려 청중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반응에 신경쓰지 않고 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노래방에서의 반응 중에 신경쓰이는 반응이 있었다. 나보고, 못 부른다고 얘기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노래방은 가수가 공연하는 곳이 아니다. 그냥 마음데로 좋아하는 노래를 한껏 멋드러지게 불러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나면 - 물론 칭찬해주려는 의미라는 건 알지만 - 네가 부른 다음에는 부담되서 못 부르겠다고 한다. 또는 너랑 같이 노래방 못 가겠다고 한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맥이 빠진다. 누가 더 잘 부르는지 경쟁하기 위해서 노래방에 가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럼 자기보다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을 보면 자신감이 생겨서 노래 부르기가 더 편하나? 나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는 게 좋았다. 가수가 부른 노래는 전문적일지는 몰라도 노래방에 가면, 친구나 동료가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나도 그 노래를 좋아하면 마이크가 없어도 같이 따라 부르는 게 좋았다. 그런데 노래 실력을 비교하는 이런 소리를 들으면 흥이 깨지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소수였고 나는 여전히 사람들과 노래방 가는 걸 좋아했다.

지인들의 결혼식에서 몇 번인가 축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누가 축가 불러 달라고 하면 거절하는 적이 없었다. 내가 직접 모르는 사람인데, 친구가 자기 아는 사람이라며 축가를 해달라고 했을 때도 나는 기꺼이 응했다. 나는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것으로 다른 이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길을 가다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결혼을 하는 걸 보면, 축하하는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하물며 누군가 내가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축가를 해달라고 하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축가를 하기 전날에는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일 목이 쉬면 어쩌지? 지난번처럼 반주가 늦게 오면 어쩌지? 반주가 키를 바꾸지 못한다고 하면 어쩌지? 괜히 한다고 덥썩 말했다고 후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예정된 결혼식이 취소되는 경우는 없었고 축가를 부를 차례가 되면 마음을 비울 수 밖에 없었다. 이 한 가지만 생각하면서.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이 중요한거야.'

회사에 들어갔을 때, 신입사원을 환영하는 회식 자리에서 노래를 시켰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분위기를 띄우기는 커녕 다운시킨다는 것. 하지만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 이후에도 뭔가 누군가 쇼를 해야 하는 자리가 생길 때면 - 나는 분위기를 못 띄우지만 - '너 노래 한 번 해봐라'했다. 나는 막연히 불쾌감을 느꼈다. 물론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 중에는 노래자체를 좋아해서 노래를 해달라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분도 있었다. '너 노래 좀 한다며? 어디 실력 좀 보자.' 이런 느낌을 받은 후로 나는 회사에서 노래하는 것에 대해 뭔가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회식 자리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분위기 띄우는 타이밍이 오자 역시나 불려 나갔고, 나는 찜찜하긴 했지만 그냥 분위기 못 띄우는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노래를 끝내고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다.
 '야, 너 또 꼬부랑 노래냐? 좀 신나는 것 좀 해봐.'

그 말이 내 가슴 깊이 박혔다. 내가 노래하면 분위기가 다운된다는 것을 막연히나마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들으니까, 굉장히 상처를 받았다. 그런 얘기를 지금 듣는다면 이렇게 맞받아 칠 수 있을까? '전 분위기 띄울 줄 모르니까, 당신이 춤을 추든 노래를 하든 직접 분위기를 띄워 보시지 그러세요' 모르겠다. 적으도 속으로는 그렇게 말할 것 같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너무나 중심이 없어서 이렇게 생각했다.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노래를 하나 준비해둬야겠다. 아무래도 트로트가 분위기 띄우기에는 좋겠지?' 나는 주현미의 짝사랑을 연습했다. 다음번에 누가 노래하라고 하면 이 노랠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어김없이 회식자리는 돌아왔고, 나는 불려 나갔다. 짝사랑을 불렀다. 효과가 있었다. 사람들이 박자에 맞춰서 손뼉을 쳤고, 분위기가 좀 업되는 것 같았다. 노래를 마치고 나니 뭔가 해냈다는 뿌듯하다는 마음까지도 들었다.하지만 그 후로 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기가 꺼려졌다. 심지어는 가까운 사람이 축가를 부탁했는데도 거절했다.

거절한 이유는 나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그리고 이 글을 쓰다보니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서 내 안의 나에게,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뒤늦게 용서를 구한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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