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8일 목요일

기억력을 연구하는 이는 기억력이 좋은 게 좋을까, 안 좋은게 좋을까?


기억은 여지없이 나를 실망시켰다. 결국 마지막에 죽은 사람은 시인이 아니었으니까....내가 인간 메모리를 연구하는 사람 맞는지 모르겠다. 정말 슬퍼진다.

1. 기억력을 연구하는 이는 기억력이 좋은 게 좋을까, 안 좋은 게 좋을까?

본문을 듣거니 읽거니 하다보니까 눈에 더 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위에 인용한 부분이고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기억력을 연구하는 이는 기억력이 좋은 게 좋을까, 안 좋은 게 좋을까? 무슨 기준으로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이 포스트를 쓰는 저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기쁨을 느끼면서... 암기과목 시험을 보는 이의 경우에는 기억력이 좋은 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당연한 얘기지만요. 그럼 기억력을 연구하는 이는 어느 편이 더 좋을까요? 흠. 생각을 좀 해보고요. 기억력을 연구하는 이는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의 기억력만 연구하는 게 아닐테니까, 별로 상관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연구자체를 하기 위해 대학에 가거나 연구과정에 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기억력이 좋은 게 좋겠지만요.

잠깐 제 얘기를 하자면, 자랑처럼 들리지만(ㅠ.ㅠ), 주위에서 간혹 '너는 외국어에 재능이 있으니까 재능없는 내 마음을 몰라'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건 외국어를 가르치는 거에요.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하는 거에요. 특히 재능없는 이에게요. 큐피트의 화살표가 이리 어긋날 수도 있는 걸까요?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에 대해서 잘 아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외국어에 재능이 있으니까 재능없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 수 없다는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조금 다르게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서 자랐으니까, 외국인 보다는 한국사람을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어.'라는 결론을 어찌어찌 내렸어요.

기억력을 연구하는 분이 연구 대상인 사람을 더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좋은 기억력이 아닌 다른 무언가일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 글쓴이의 뇌는 왜 시인이 죽었다고 기억했을까요?

글쓴이가 기억하는 영화의 결론은  실제 영화의 결론과 다릅니다. 그렇다면 글쓴이는 왜 시인이 죽었다고 기억했을까요? 기억내용 자체가 사라졌다면 또는 너무 깊이 숨어버렸다면 누군가 죽었다는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야 할텐데요. 그런데 하필 시인이 죽었다는 내용을 뇌가 기억해 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봤어요.

뇌가 처음에 영화를 봤을 때 아마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 갔겠지요. 그런데 실제 영화는 경우A로 진행되었지만, 글쓴이의 뇌는 경우A는 좀 뭔가 안맞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요? 마음에 안 들거나, 더 나은 전개방향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뇌는 경우A'가 더 맞다고 또는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고, A'를 기억공간에 저장시킨게 아니었을까요? A를 A로 기억하는 게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면에서는 우월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반면에 A를 A'로 보는 것은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A와 A'사이의 갭은 꼭 좋다고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인것 같아요. 그러니, 슬퍼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 발아점

블로그 낭송 : 아거의 '기억의 연약함(Memory's fragile power)' (민노씨)

Memory's fragile power (아거)


* 관련 트윗 중에서

@minoci
기억력을 연구하는 이는 기억력이 좋은 게 좋을까, 안 좋은게 좋을까? (@nassol99) http://bit.ly/duPgge // 흥미로운 질문, 따뜻한 추론...

@heterosis
이건 마치 철학자는 철학적인가하는 질문과 같은.. RT @minoci: 기억력을 연구하는 이는 기억력이 좋은 게 좋을까, 안 좋은게 좋을까? (@nassol99)http://bit.ly/duPgge // 흥미로운 질문, 따뜻한 추론...

@nassol
철학자는 자기가 철학하는 것 자체가 본업(?)이기 때문에 철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 기억력 연구자의 본업은 자기 기억력으로 뭔가를 하는게 아닌, 기억력에 대해서 연구하는 거기 때문에, 본인기억력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댓글 4개:

  1.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들이네요. :)

    나솔님 추론들이 논리적이라서라기 보다는 나솔님께서도 강조하신 글의 취지처럼 인간적이고, 따뜻한 것이라서 더 마음을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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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assol 님은 학위 공부하시면 잘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궁금한게 있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있으신 듯.. ^ ^

    맞아요. 전 제 기억에 문제가 많아서 기억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왜 이렇게 지나간 일을 금방금방 잊을까 정말 고민스러울 정도로 조금만 지나면 다 잊어버려요... 슬프죠..

    그래서 기억뿐만 아니라 망각 (forgetting)에 대해서 연구를 했죠...

    제 연구를 뒷받침하는 생각은 바틀렛 경의 스키마 이론이며, 아래 글에 설명을 해 둔 적이 있습니다.



    http://gatorlog.com/mt/archives/0014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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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민노씨 - 2010/03/18 17:29
    앗, 감사합니다 ^^ 질문이 흥미롭다는 칭찬은 저에게 '최고'의 칭찬이에요.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게 또 블로그의 장점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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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거 - 2010/03/19 13:11
    앗, 읽어주셨군요! 저는 학위공부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다가요, 최근에 성인영어교육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고는 생각하고 있던 참이였어요. 그런데 학위과정을 밟기는 싫고.. 여튼 그런 상태입니다. 원래는 궁금한 걸 물고 늘어지는 거를 스스로 억제하려고 했었는데요, 그러니 자꾸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서 전략을 바꿨어요. 그냥 묻고 싶은 건 마음껏 묻기로요. 그래서 저에게 만들어준 게 아이디어 노트에요. 내용은 이곳에서.. 아이디어 노트를 쓴 후로 참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http://nassol.textcube.com/205



    링크해주신 글은 정말 흥미롭네요.. 자기에게 유리하게 기억을 재구성해내는.. 비슷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발자분들이 영어해석과제 내신 것들 확인하면서 이런 걸 발견할 때가 있어요. '쉬움'으로 표시했는데, 해석은 정확하게 맞지 않은 경우에요. 이런 걸 저는 갭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갭이 어느정도 이하가 되야 독학할 수 있다는 게 제 믿음입니다. 실제 기억과 재구성한 기억의 거리를 생각하니 '갭'이 생각나네요^^ 언어에도 뭔가 스키마라는 게 있나 봅니다. 참, 바틀렛 경의 책은 읽어봐야겠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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