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4일 금요일

내 오랜 친구에게   ..

내 오랜 친구에게 

  당신을 알고 지낸 지도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더 이상 몇 년을 알고 지냈는지 세는 게 의미 없을 것 같아요. 그냥 알게 된 지 오래되었다고 하면 되겠어요. 당신은 우리 학교에서 참 특별한 존재였어요. 아이돌과도 같은 존재였지요. 학생들은 당신이 지나가면 "와!" 하며 주위 아이들에게 알렸어요. 운동장에서 조회를 할 때 멀찍이서 보면 당신은 선생님들 사이에 선 고독한 사슴과도 같았어요. 투명한 눈망울을 하고, 그 어떤 유혹에도 끄덕하지 않을 것 같은 고고한 표정으로 홀로 우뚝 솟아 있었어요. 무엇을 바라 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항상 궁금했어요. 나는 당신과 얘기하고 싶었어요. 쉬는 시간에 교사휴게실을 찾아갔어요. 용무도 없이 불쑥 찾아가서는 어떻게 당신을 불러내었는 지 모르겠어요. 당신 입장에서는 그게 좀 난처했을 수도 있는데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당신은 나에게 집 전화번호를 써주었어요. 손가락이 길어서 볼펜이 짧아 보였어요. 손을 오므리고 짧은 볼펜을 손 끝에 쥐고는 길쭉하게 휘갈기면서 숫자를 적었어요. 당신 나라에서는 7자를 그렇게 쓴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 쪽지를 오래도록 간직했어요. 마치 그 쪽지를 잃어버리면 전화할 수 없기라도 하는 것처럼요. 

  아마 매일 전화했던 것 같아요. 어떤 날에는 전화를 받았고 어떤 날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전화를 걸 때마다, 오늘은 전화를 받을까 하는 게 궁금해서 마음이 떨렸어요. 전화를 받으면, '아, 있구나'하는 안도감과 함께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하는 난처함이 동시에 밀려왔어요. 오래 통화를 하기도 하도 짧게 통화를 하기도 했어요.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얘기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해요. 지금 누군가 나에게 매일 전화하고 한 두시간 동안 통화를 하면 아마 못 견딜 것 같아요. 그 때 우리의 대화에 소통이란 게 이루어져서 당신도 즐거움을 느꼈다면 정말로 다행이겠어요. 그 때의 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어서 당신이 대화를 즐기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하루는 아빠에게 크게 혼이 났어요. 평소에 삼만원하던 전화세가 십오만원이 넘게 나왔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아셨는지 범인으로 저를 콕 집으셨어요. 돈도 돈이지만 저녁 여섯 시부터 여덟 시 까지는 집전화가 통화중이어서 아무도 우리집에 도통 전화를 할 수가 없다며 혼내셨어요. 앞으로는 용건만 간단히 하고 끊으라고 하셨어요. 나는 아빠의 말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어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나에게 아이가 생기면 따로 전화번호를 만들어줘야지.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말이에요. 전화세가 문제겠어요, 그런 중요한 일에. 그 때는 핸드폰이 없던 때라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내 영어실력은 당신이 아니었다면 좋아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앉아서 사전펴서 공부한 건 나였다고 당신은 얘기할 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이 해준 건 나와 얘기한 것 밖에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어요. 나에게 심어주었던 건, 내 생각을 얘기하고 싶다는 마음, 내가 말하면 비웃지 않고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었어요. 마치 내가 어른이라도 되는 듯이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고 당신의 생각도 얘기해 줬어요. 그 누구도 내 얘기를 그렇게 들어주지 않았어요. 나는 그저 십대 여고생일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그 사실을 별로 중요히 여기지 않는 듯 했어요. 내용이나 생각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어요. 십대 여고생이었던 때 이후로 십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이 그 때보다 훨씬 더 완성된 인간이고 그 때는 아무 생각 없는 여고생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때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성인이나 다름없었어요. 아니면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성인이 아니거나요. 제가 나이가 들면 누군가가 어리다고 그 의견을 무시하지 말아야지요.

  한 번은 고향에 다녀오면서 내게 선물을 가져왔어요. 오딧세이와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이 나오는 영화였어요. 나는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오딧세이를 읽지 않았고, 그 때의 비디오 테잎은 비디오에 넣었더니 재생이 안되서 결국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오딧세이와 핑크 플로이드는 왠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어요. 아, 오딧세이를 읽어버리면 그 잡힐 듯 말 듯한 환상이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아서 고이 모셔두기만 했어요. 그 후로 한참 후에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을 많이 듣게 되었고 또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 영화만은 보지 않았어요. 

  당신은 항상 오피스텔에 살았어요. 그 때 나는 오피스텔이 어떤 덴지 몰랐어요. 나는 시골에서 단독 주택에 살다가 그 다음에는 다세대 주택이랑 아파트에만 살아봤어요. 항상 한 가족이 모여서 사는 집만을 보아왔기 때문에 혼자 사는 오피스텔 안이 어떻게 생겼는 지 몰랐고 어떤 곳일까 상상만 했어요. 언젠가 당신이 나에게 오피스텔 호수를 알려준 이후로 나에게는 버릇이 하나 생겼어요. 그 때는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오피스텔 주위를 뱅글뱅글 돌면서 어느 집일까 세어 보았어요. 오피스텔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지만 밖에서 보면 하나같이 똑같이 생긴 게 왠지 불빛 하나에 방 하나일 거라고 딱 느낌이 왔어요. 아래에서부터 1층, 2층, 3층, 하고 세다가 헷갈려서 또 다시 1층, 2층, 3층 하고 세었어요. 1층은 불이 켜져 있고, 2층도 켜져 있고, 3층은 꺼져 있고 ... 7층은 꺼져 있고, 에이, 잘못 셌나보다 하며 다시 세었어요. 다시 세어봐도 또 다시 세어봐도 불이 꺼져 있으면 그 날은 전화하지 않았어요. 불이 꺼져 있어도 전화할 때도 있었어요. 혹시나 불을 꺼놓고 있는 게 아닐까 하면서요. 있어도 불을 꺼 놓았다면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 않았겠지요. 그 때는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지금 그런 짓을 했다가는 바로 스토커라는 소리를 들을 거에요. 학교 다닐 때를 기억해보면 오피스텔 주위를 뱅글 뱅글 돌았던 기억이 많이 나요. 

  집 문제로 골치가 아팠던 나는 항상 고향을 떠나고 싶어했어요. 대학이라는 그럴싸한 명목으로 서울로 가게 되었고, 당신 역시 학교 선생님 생활을 마치고 한글을 공부한다고 서울로 갔어요. 나는 새내기 생활에 젖어들었겠고 당신은 한글을 열심히 공부했겠지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가끔 만나서 부쩍 느는 당신의 한글 실력으로 얘기를 했어요. 그 때 쯤 나는 고등학교 때처럼 자주 전화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함께 거리를 갈 때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을 은근히 즐겼어요. 당신과 함께 고향에서 하던 놀이를 기억하면서요. 고향에서는 워낙 당신이 눈에 띄다 보니, 길가 벤치에 앉아서 얘기를 하다가 행인이 지나갈라치면 백이면 백 가다가 고개를 돌려서 한 번 더 우리를 쳐다보았지요. 우리는 행인이 고개를 돌려서 다시 보는 그 절묘한 순간에 동시에 그 행인을 떡하니 쳐다보면서 무안하게 만들곤 했지요. 무안해진 행인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마치 쳐다보지 않았다는 듯 가던 길을 갔고, 우리는 '나는 봤지롱' 하면서 키득키득 대었어요. 

  서울에서 당신과 만났던 기억은 많이 나지 않아요. 각자 새로운 생활로 바빴겠지요. 그러다가 병원에서 만났어요. 내가 입원해있을 때. 나는 기브스를 하고 병실에 꾀죄죄하고 부은 얼굴로 누워있었고 당신은 어떻게 알았는지 빼꼼히 병실에 얼굴을 내밀었어요. 물론 내가 알렸던 거겠지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진짜로 와줬다는 게 놀라웠어요. 감개무량하달까. 항상 쫓아다니고 귀찮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많았는데 왠지 당신도 나를 친구로 여겨주고 마음을 써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어요. 

  대학을 다니네, 고시를 하네 하면서 방황하다가 나는 러시아로 떠났어요. 당신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무슨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아주 간간히 이메일을 보내왔어요. 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했더니 당신은 진심으로 기뻐해줬어요. 지금도 기억하는데, 이런 말이었던 것 같아요. 'you deserve to be happy.' 준스토커질을 그렇게 했었는데 이렇게 기뻐해주다니. 

  한국에 돌아온 나는 원거리 연애를 하면서 학교도 마저 다니고 회사도 다녔어요. 회사에서는 재미있을 때도 있었고 재미 없을 때도 있었어요. 항상 고민하는 마음을 한 켠에 두고서 매일 회사를 나갔어요. 멀리 있는 남자친구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가야 하나 그를 불러 와야 하나 하면서요. 회사에서는 착하게 굴려고 노력했지만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었던 나는 남자친구에 대한 일을 싹 비밀에 부쳤어요. 거짓말 하기는 싫었지만 온갖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것은 더욱 싫었으니까요.

  여느 때와 같이 당신은 나에게 짧은 이메일을 보내왔어요. 한국에 가서 일하게 되었다는.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해보면 당신이 참 큰 부분을 차지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까 정말 그 시절에 당신이란 존재가 있었는지가 가물가물해질 때가 있었어요. 당신이 고향으로 돌아가던 때 공항에서 당신과 작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으로 보는 게 되겠구나. 내 청소년 시절이여, 안녕.'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당신은 꼭 7년 만에 한국에 나타났어요. 근 십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사슴처럼 우뚝 솟아있던 당신의 모습은 왠지 배불뚝이 중년아저씨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면서 만나러 나갔어요.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당신은 거의 그대로였어요. 하지만 차갑고 냉냉했던 7년 전보다 얼굴 표정이 왠지 여유 있어 보이고 은근히 푸근해 보였어요. 이십 대였을 때보다 당신은 더 많이 웃었어요. 

  당신은 인사동을 참 좋아했어요. 한국의 오래된 장롱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지요. 나에게 이건 짜가다, 이건 진짜 오래되어 보이도록 복원해 놓은 짜가다 그런 설명 들을 해줬지요. 한 번은 어떤 가게에서 가구를 구경하고 있는 데 당신이 한글을 하니까 직원이 신이 나하면서 여기 사냐며 직업이 뭐냐고 물었죠. 외교관이었던 당신은 그 질문에 '월급쟁이'라고 대답했어요. 전혀 그 단어를 예상하지 못했던 직원은 잘 못 알아들어서 되물었고 당신은 '월-급-쟁-이'하고 소리쳤어요. 나는 그게 웃겨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따지고 보면 틀린 대답은 아닌데 샐러리맨도 아니고 월급쟁이라니. 직업이 뭐냐고 물어볼 때 '월급쟁이'라고 대답하는 한국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리고 당신이 '영어 선생님'이라고 대답했을 때와 '외교관'이라고 대답했을 때 점원의 머릿 속에 어떤 생각이 피어오를까 상상해봤어요.
 
  당신은 걷는 걸 참 좋아했지요. 한번 우리는 녹사평에서 만나서 네 시간인 가를 걸었어요. 한창 단풍이 물들 때였고 이태원을 지나고 얼마 안 있어 부쩍 사람이 없어졌어요. 한 참 걷다가 충무로역이 나왔고, 또 한참 걸으니 동대문 운동장이 나왔고 종로까지 갔어요. 나는 마음 한 켠에 있던 고민을 얘기했어요. 당신은 주저없이 떠나라고 했어요. 좋은 짝을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면서요. 거기 가서도 나는 잘 살 수 있을 거라며 격려해줬어요. 당신은 내 결혼식때 오겠다고 했어요. 당신은 전화도 잘 안 받았고, 약속에 대한 것도 잘 잊어버리고 그랬지만 내 결혼식때 오겠다는 말은 설사 나중에 잊어버린다 하더라도 고마웠어요. 

  나는 결혼하기 전에 한국을 떠났어요. 떠나기 전에 당신에게 줄 게 있었어요. 한 번 마지막으로 식사라도 하면 좋았겠지만 우리의 스케쥴은 어긋났어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의 약속에 가기 전에 잠깐 당신 회사 근처로 갔어요. 당신은 차를 몰고 나오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고 나는 기다리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발을 동동 굴렀어요. 으.. 또 늦네. 당신은 빼꼼히 차를 들이밀면서 타라고 했고 나는 당신에게 열쇠를 건넸어요. "이제 작별해야지." 아홉살이나 어린 주제에 나는 반말을 찍찍 던지곤 했죠. 그러자 당신은 태연하게도 "I thought we were having dinner together." 그러는 거에요. "You're an asshole." "I know." 난 처음으로 당신에게 욕이란 걸 한 셈이었지만 그 말에 묻어나는 느낌을 당신도 느꼈는지 그리 싫어하지 않으면서 어깨를 으쓱했어요. "내 결혼식 때 보던지 그 후에 언젠가 보던지 하자."라며 나는 차에서 내렸어요. 

  결혼을 한 달인가 앞두고 나는 당신에게 연락했어요. 결혼한다고, 올거냐고. 당신은 물론 오겠다고 하면서 날짜가 언제인지 물었어요. 날짜를 얘기하고 내 고향에서 할 거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한국에서 하는 거냐고 되물었어요. '약속은 잘 안 지켜도 의리 하나는 제대로구나.'

  결혼을 코 앞에 두고 연락했더니 역시나 표를 못 구하고 있다고 했어요. 으.. 역시. 내가 한 달 전에 연락한 이유가 뭔데. 나는 밤 늦게 표를 찾아서 새벽 두시가 넘어서 전화를 했어요. 그 시간대 괜찮겠냐고. 당신은 자다가 깬 졸린 목소리로 음.. 내일 통화하면 안될까 했어요. 나는 안된다고 내일은 시간 없다고 하자 당신은 그 시간대 좋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How much do I owe you?" 라고 물었어요. "You don't owe me anything." 그렇게 말하면서 문득 당신에게 받은 게 참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뭘 주든 당신이 나에게 빚이 생기겠어요.

  내 결혼식은 해안도로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열렸어요. 사실 당신이 진짜 온다고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어요. 여느 때처럼 '미안, 깜박했어' 그럴 줄 알았어요. 설사 안와서 표가 무용지물이 된다고 해도 그닥 화나지 않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와 있었어요. 턱을 괴고 투명한 눈망울로 내가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어요. 

  지금은 나도 당신도 한국을 떠났어요. 아무것도 없이 다시 시작해서 쌓아왔던 한국 생활을 뒤로 하고 돌아가는 게 기분이 이상하다며 짧은 메일을 보내왔어요. 당신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곤 해요. 하지만 또 모르지요.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또 나타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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