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8일 목요일

Celine Dion - Ziggy 노래로 배우는 프랑스어



셀린디온의 Ziggy라는 곡을 읽는 법을 연습하는 내용을 올렸습니다.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은 한 번 읽는 법을 연습해보시고 흥얼거리는 기쁨을 누려보세요~
>> 영어 해석이 나와 있는 가사 링크


1. 첫번째 부분



Ziggy, il s'appelle Ziggy
Je suis folle de lui
C'est un garçon pas comme les autres
Mais moi je l'aime, c'est pas d'ma faute
Même si je sais
Qu'il ne m'aimera jamais

Ziggy, il s'appelle Ziggy
Je suis folle de lui
La première fois que je l'ai vu

Je m'suis jetée sur lui dans la rue  
=> 쥬므쉬쥐떼쉬흐- 뤼당-  라휘- 이..

J'lui ai seulement dit
=> 쥐에썰- 멍- 디

Que j'avais envie de lui


2. 두번째 부분


Il était quatre heures du matin
=> 일-레떼- 꺄트외-뒤-마-땡

J'étais seule et j'avais besoin
=> 쥬떼썰에자-베베수왕-

De parler à quelqu'un

Il m'a dit: viens prendre un café
=> 일 마디 비앙 프헝드흥 까페

Et on s'est raconté nos vies
=> 옹쎄하- 꽁 - 떼노비

On a ri, on a pleuré
=> 온아히-  온아쁠러헤


3. 세번째 부분


Ziggy, il s'appelle Ziggy
C'est mon seul ami

Dans sa tête y'a que d'la musique
=> 당사떼띠야-끄들라뮈지끄

Il vend des disques dans une boutique
=> 일방드디-스끄당-쥔-부띠-끄

On dirait qu'il vit dans une autre galaxie
=>  옹디헤-낄-비- 덩쥔오트흐-걀-락-씨

Tous les soirs, il m'emmène danser
=> 뚤-레수와, 일- 머멩당쎄

Dans des endroits très très gais
=> 당데정-드r와-트헤 트헤 개-

Où il a des tas d'amis
=> 우일라 데, 따다미-

Oui, je sais, il aime les garçons
=> 위 쥬 쎄, 일래-믈래갸흐-송

Je devrais me faire une raison
=> 쥬드브해므패-윈헤종-

Essayer de l'oublier, , , mais
=> 에쎄예 드 루블리예... 메..



Ziggy, il s'appelle Ziggy
Je suis folle de lui
C'est un garçon pas comme les autres
Et moi je l'aime, c'est pas d'ma faute
Même si je sais

Qu'il ne m'aimera jamais.
=> 뀔느메-머-하- 좌-메

▶ 방송파일 다운로드

대학생들이 트위터를 많이 쓰지 않는 이유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된 글



온라인과 친하지 않은 유형 Vs 온라인과 친한 유형

생각을 풀어놓기 전에 우선 사람들을  간단하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겠다. 온라인과 친한 유형과 온라인과 친하지 않은 유형. 내 마음대로 나눈 유형인데, 온라인과 친하지 않은 유형이라고 하면, 일 목적, 필요한 정보 검색 목적, 영화다운, 게임, 노래듣는 목적, 기존 친구와의 메신저, 기존 친구와의 홈피방문 이외의 목적으로는 온라인을 잘 사용하지 않는 유형을 의미한다. 반면에 온라인과 친한 유형이라고 하면 자기 블로그를 운영한다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한다거나, 뭐랄까, 온라인 상에서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거나 하고 싶어하는 유형을 의미한다.

온라인과 친하지 않은 대학생이 인터넷을 쓰는 목적

대학시절을 돌이켜 보면 대학생들이 컴퓨터, 인터넷을 쓰는 목적은 대략 이런 것 같다. 레포트쓸 때 자료검색용, 뭔가 정보 찾아볼때, 오프라인 모임의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 활동, 그리고 채팅. 졸업할 때쯤 되면 취업 정보 찾아보거나 실제 지원을 할 때. 대략 공부, 연애, 취업 정도가 아닐까 한다. 물론 온라인과 친한 유형은 좀 더 많은 목적으로 인터넷을 쓰겠지만 온라인과 친한 유형 자체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중에서 '새로운 만남'과 관련된 목적에 해당하는 것은 '연애'다. 채팅이 유행할 때가 있었는데, 물론 관심사 위주로 채팅방이 열리고 하기도 했지만, 벙개를 목적으로 하는 채팅이 많았던 것 같다. 채팅으로 친구를 만나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는 대학에서 실제로 얼굴 보고 사귀니까. 동아리에 들어서 마음맞는 친구들을 만나서 실제로 같이 놀러 다니는데 굳이 채팅으로 새로 사귈 필요가 없었던 걸까. 하지만 연애 대상은 조금 다르다. 주위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고. 채팅은 내가 접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 아니었을까 한다. 즉, 온라인과 친하지 않은 유형의 대학생이 새로운 누군가와의 만남, 관계를 생각하며 인터넷을 쓸때 그가 생각하는 그 상대는 오프라인에서 만날 연애상대가 아니었나 한다.

온라인과 친하지 않은 직장인이 인터넷을 쓰는 목적

이 대학생들이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면 다른 종류의 온라인 매체를 쓰게 된다. 예를 들면 사내 메신저, 미스리 등등. 온라인과 친하건 안 친하건 메신저를 많이 쓴다. 그런데 대학생때와는 목적이 조금 다른 듯 하다. 메신저로 대화하는 이유가 이제는 연애상대찾기가 아니라 정보공유, 인맥 쌓기 등인 것 같다. 회사 생활을 떠올려볼때, 미스리는 사내 소식 알기에 참 편리했다. 상사 몰래 이런저런 팀분위기 파악에 필요한 내용들도 안전(?)하고 빠르게 알 수 있었고 - 그러다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 다른 팀 내용도, 경쟁사의 내용도 수월하게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메신저로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경로를 통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이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 타팀이나 경쟁사 직원을 직접 찾아가서 뭣 좀 알려달라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뜨억하다. 그런데 미스리는 간편하다. 아이디만 알면 쪽지 뿌려놓고 답이 오면 좋고 안 오면 그만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질문을 단체로 돌리면 거기에 내가 알면 대답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한다. 부담이 없다. 그리고 타팀에 별로 안 친한 사람도 미스리로 미리 얘기를 주고 받으면 관계가 빨리 가까워지는 것 같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일부 연애관계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미스리를 쓰는 이유의 큰 부분은 사내, 업계 정보공유, 인맥쌓기가 아닌가 한다.

그럼 트위터는?

그럼 트위터는 뭘까? 트위터를 쓰는 목적은 뭘까? 사람들은 왜 트위터를 쓰고 싶어하는 걸까? 아직 트위터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쓰는 것은 아니지만, 트위터를 많이 쓰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주로 눈팅을 하는데 트위터가 정말 좋다. 그런데 왜 좋은지는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다.

트위터 :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한 통로
트위터도 채팅이나 메신저나 온라인 카페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한 통로가 아닌가 한다. 사람들과의 좋은 대화는 좋은 관계로 이어지고 그 관계는 그 상대를 좋은 무언가로 만든다. 채팅에서 나눈 좋은 대화는 좋은 만남으로 이어지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좋은 만남은 그 상대를 좋은 연인으로 만든다. 미스리에서 나눈 좋은 대화는 그 상대를 좋은 정보 제공자, 일 관련 상담자로 만든다. 그럼 트위터에서의 좋은 대화는 상대를 좋은 무엇으로 만들어줄까?

트위터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연애 상대라면 뭔가 기준이 있을 것이다. 외모, 성격 등등. 정보제공자도 그럴 것이다. 타팀 사람이면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든지, 경쟁사 사람이면서 깐깐하지 않은 사람이라든지. 그런데 트위터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트위터에서 쌓고 싶은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나는 이 부분이 흥미롭다. 물론 연애 상대에 대해서도 뚜렷한 기준을 스스로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뚜렷하게 알기도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뭔가는 좋고, 뭔가는 싫다는 것은 막연히 느낀다는 거다. 트위터도 그렇지 않나 싶다. 새로이 알게 되고 싶은 사람, 새로이 알고 싶지 않은 사람, 그 명확한 기준을 설명할 수는 없어도 뭔가 느끼는 게 있다.

인생의 동료

트위터에서 찾고 싶은 사람에게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인생의 동료라고. 조금 촌스럽지만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것 중에는 제일 나은 표현이다. 결혼하는 사람은 인생의 동반자이고, 같은 업계에서 고락을 같이 하고 싶은 동료라면 그 업의 동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가족과 업계에 관계없이, 인생의 중요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이는 인생의 동료가 아닐까, 그런 이를 사람들은 트위터에서 찾고 싶은게 아닐까?

혹시 여기에서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게 기존의 관계에 대해 전혀 불만족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관계에서 다 채워지지 않은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게 아닐까? 기존의 통로로 만날 수 있는 사람에게서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싶어서 새로운 매체가 뜨면, 혹시 여기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시도해 보는 게 아닐까? 또는 기존의 관계가 인생의 동료라고 할 수 있다면, 그 관계가 정말 좋아서라도 그런 관계를 새로운 사람과 더 만들고 싶다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

들릴 듯 말 듯한 나의 목소리를 새로운 이들에게

나의 과거를, 나의 일상을 돌아보면, 특별히 노력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똑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나를 본다.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도 똑같으며 그에 대한 나의 대답도 똑같다. 물론 사람이란 몸도 마음도 자극에 반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그 자극과 반응은 많이 반복되는 거라고 생각해보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뭔가 내 안에서 자발적으로 나오는 것도 있지 않을까 한다. 아무도 나에게 말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뭐라고 말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목소리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걷어내어 본다. 모든 것들을 걷어내어 보면 거기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를 누구에게 얘기할까? 물론 내 가족 중 일부에게도 내 친구들 중 일부에게도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친구들에게도 얘기하고 싶다. 그런 얘기들을 나는 블로그에 쓴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의 그런 목소리도 듣고 싶다. 그래서 나는 다른 블로그들을 뒤적뒤적 거리면서 그런 목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트위터에서 열심히 다른 이들의 트윗을 구경하고, 이들의 블로그 글을 읽고, 링크하는 글들을 읽어본다. 나를 팔로우하지 않는다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지, 내 목소리를 들으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상대는 내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그리고 들을 수 있을 때, 그 때 들으면 된다. 그 때 내가 블럭만 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블러할 이유가 어디있나, 나도 그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2010년 2월 11일 목요일

'개발자를 위한 영어' 홈페이지 소개

개발자를 위한 영어 홈페이지 안내를 다시합니다.
제가 사이트에서 이것저것 바꿨더니 블로그에 링크된 내용들 링크가 다 엉망이네요 ^^
링크가 깨진 포스트들은 비공개로 해두었습니다.




과제맵

과제맵은 약간 간단하게 바꾸어 보았고요.


개인전용 노트

공부하신 내용과 피드백을 개인별로 모아드리는 개인전용 노트를 만들었습니다.

개인전용 노트에 공부하고 싶으신 분은 저에게 지메일 계정을 알려주시고요~
(트위터, 이메일 등)

또 뭔가 바뀌면 다시 알려드릴게요~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이누엔도 3. heterosis, Wallflower블로그


트위터에서 팔로우 하는 분 중에 @heterosis라는 분이 있다. 이 분이 올리는 트윗 또는 링크 중에는 내게는 어려운 내용도 있고, 흥미로운 내용도 있다. 오늘 올라온 트윗 중 이런 글이 있었다.

멋진데? 아니면 어쩔거야? 응? http://wallflower.egloos.com/ 현대철학자들 치고 라캉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 글을 보고 나는 링크된 글(몇 가지 생각들, 단상)을 읽었다. 블로그를 읽다보니 이택광이라는 이름 석자가 드러났고 트윗에서 누군가 그에 대해 얘기한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비판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같이 비판적이 될 지는 내가 직접 글을 읽고 판단할 일이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가서 글을 읽었다.

나는 블로그 글을 읽으면서 상상한다. 이 글을 쓴 이는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꿈꾸는 사람일까? 무엇에 화내는 사람일까?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일까? 그런게 드러나지 않은 블로그는 안 읽는다. 읽지 못하겠다.

블로그 글을 읽다보니 이택광이라는 분은 직업이 교수이다. 나는 글에서 이분의 인격, 바라는 것, 분노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이 글에 드러나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블로그의 다른 글들도 읽어보려고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heterosis님은 이 글을 비판하는 트윗을 올렸는데 결국은 그 트윗 '덕분(?)'에 난 이 블로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내용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블로그'라는 호감도를 가지게 된 상태이다.

여기에서 어제 새로 알게 된 '이누엔도'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이누엔도의 개념을 소개하는 Gatorlog 블로그의 흥미로운 글 중에는 이런 실험결과가 나온다.

Wegner박사팀은 실험을 통해 가공의 정치인 Bob Talbert에 대한 두 종류의 이누엔도를 만들었다. 신문 헤드라인에 나온 제목이라면서 실험 참여자들에게 "IS BOB TALBERT LINKED WITH MAFIA?"와 "BOB TALBERT NOT LINKED WITH MAFIA"라는 두 종류의 이누엔도를 보여주고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단언적 문장 "BOB TALBERT LINKED WITH MAFIA"와 비교했다. 실험 참석자들의 BOB TALBERT에 대한 인상을 물었을 때, 당연히 직접 공격하는 문장을 본 실험 참여자들은 BOB TALBERT에 대해 부정적인 점수를 주었다. 그런데 두 종류의 이누엔도 문장을 본 참여자들 역시 이 가공의 정치인에 대해 거의 똑같이 부정적인 점수를 주었다. 아하!! 이를 통해 Wegner박사팀은 이누엔도를 통해서 사람을 간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직접적인 공격만큼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영어가 섞여서 불편하신 분을 위해 조금 간추려보면,

한 박사는 가공의 정치인 탈버트를 만들고, 세 가지 문장을 만들었다.
1번 - "탈버트는 마피아와 연관이 있다."               <- 직접 공격하는 문장
2번 - "탈버트는 마피아와 연관이 있는가?"     <- 이누엔도 - 질문형식 활용
3번 - "탈버트는 마피아와 연관이 없다."       <- 이누엔도 - 부정문 활용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이 세 문장이 신문 헤드라인에 나왔다며 알려주고 정치인 탈버트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직접 공격하는 문장을 보고 탈버트에 대해 부정적인 점수를 주는 것은 자명하지만 이누엔도 문장의 효과는 어땠을까?

결과는.. 두둥..   이누엔도 두개를 본 사람들 모두 탈버트에 대해 부정적인 점수를 주었다. 즉, 탈버트는 마피아와 연관이 없다는 문장, 있는가라고 묻는 문장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탈버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즉, "탈버트는 마피아와 관련없어!", "탈버트는 마피아와 관련이 있을까?"라는 문장을 본 사람들도 마치 이 정치인이 마피아와 뭔가 연관이 있나보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 보다.

실험결과를 보면 문장에서 대놓고 주장하는 내용과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게, 그 문장을 읽는 이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해석이 들어설 수 있는 듯 하다.

참고로 문장을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Gatorlog 블로그의 글에서 "구문 기억 실험"이라는 흥미로운 실험으로 소개한다. 논리적 함축과 실용적 함축, 실용적 함축 부분이 흥미롭다.

물론 heterosis님은 이누엔도 수법을 쓴 경우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경우이다. 이 경우가 낳은 결과가 흥미로워서 생각이 났다. heterosis님은 그 글의 일부분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반박하는 내용을 트윗으로 올렸다. 하지만 그 트윗을 본 내 머릿 속에서는 이런 '실용적 함축'과정이 일어났나보다.

"heterosis님이 시간을 내어 끝까지 읽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 글인가보다"

물론 반박의 대상이 된다고 해서 그 대상이 가치로워지는지는 모를일이지만 그 대상이 가치로운지 아닌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2010년 2월 9일 화요일

이누엔도 1. 민노씨.네 블로그 글을 이해하기 위한 글

'이누엔도'라는 개념에 대해서 오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http://www.minoci.net/1073

 

요전에 민노씨.네 블로그에서 댓글로 범죄자의 거짓을 숨기기 위한 진실이 뭔지 질문을 드렸더니, 민노씨가 설명하는 글을 써주셨어요. 감사드립니다.

우선 민노씨.네에 올라온 글을 읽었는데요, 좀 어려워서 정리하면서 읽었습니다. 영어 공부할 때 쓰는 쪼개기 수법을 한글로도 쓰게될 줄은 몰랐습니다 :) 대부분이 읽은 글 내용이기 때문에 제 생각을 쓴 부분은 파란색으로 표시하겠습니다.

 

우선 트윗부터 이해하기..

 

@gatorlog님의 이누엔도 연재글과 @nassol99님의 질문에 대한 단상. 혹은 그 질문에 포함된 대답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질문.

 

  1. 질문에 대한 단상 -> 제 질문이지요? 범죄자의 거짓과 진실이 무엇을 가르키느냐는..
  2. 그 질문에 포함된 대답 -> 제 질문에 대답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아니면 그 아래 달린 대답..
  3. 이 대답에 대한 대답  -> 놓쳤습니다..
  4. 대답으로서의 질문 -> 놓쳤어요 ㅎㅎ 어떤 질문인가요? 마지막에, 수단화된 진실은 어디까지가 수단이고 목적인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그 부분인가요?

    => 정말 많은 말을 짧은 표현에 담으시는군요 :) 제 이해력을 탓하세요.

 

이누엔도의 뜻

 

Innuendo : 속임, 기만이라는 뜻,

=> 한국 구글에 '이누엔도'라고 검색하니, 게이터로그, 민노씨.네 블로그가 뜨고 그 외에는 '이누엔도'에 대해서 나오지 않네요. 그래서 영어로 검색했더니...

위키피디아에서는 어떤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an indirect remark about somebody or something, usually suggesting something bad, mean or rude...(사람이나 그 무언가에 대한 직접적이지 않은 표현, 보통 나쁘거나 잔인하거나 무례다고 의미할 때 쓰임..)" 라고 나오네요. 흠 한 마디 한국말로 표현하시 어렵다는 게 이해가 됩니다.

 

이누엔도는 여러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ㄱ. 수용자를 선동과 조작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ㄴ. 발화자가 의도한 편견을 확대하기 위한 기만적인 언술장치로 쓰인다.

ㄷ. 주로 인신공격을 위해 사용된다.

 

=> 이누엔도는 나쁜 행위 같군요..나쁜 행위는 나쁘다고 인지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짓을 숨기기 위한 진실

 

황지우... 범죄자는 거짓을 숨기기 위해 진실을 말한다. 이 진실이 중요하다.. 진실이 갖는 상대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이 문장은 이중적이다.

 

이중적

ㄱ. 진실은 그 자체로 거짓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ㄴ. 거짓을 위해 동원되고, 수단화된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 그저 폐기해야 할까?

     2) 그 거짓을 깨뜨리기 위한 도구로 그 진실을 다시 재도구화할 것인가?

 

수단화된 진실은 어디까지가 수단이고, 어디까지가 목적인가? 그 양자는 어떻게 구별한가?

 

=> 제 생각에는 수단이냐, 목적이냐는 그 진실을 마주하는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이 혼자일 때에는 수단도 목적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진실을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에게는 수단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수단화된 진실이, 진실을 듣는 상대와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그 진실이 수단 또는 목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특히 그 진실을 듣는 상대가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도 그 진실이 수단으로 전락한 상태로 남느냐, 아니면 수단화된 상태를 벗기는 상태로 바뀌느냐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답글 중에 조금 보완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제가 남긴 댓글 중 아래와 같은 부분이 있는데요.

 

비판하는 분이, 반드시 '대안을 제시하세요, 행동으로 보여주세요'라고 독자가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소망을 보여주지 않을 때 독자가 느끼는 무력감에 대해서 인지하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 제가 썼지만 이 부분이 너무 퉁쳐져 있네요 ^^;  제 생각하는 비판은 소망을 가진 사람이 소망하는 상태와 현재 상태의 괴리를 얘기하는 것이고요, 그 괴리를 얘기하고 생각하는 단계에서 반드시 대안이나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단지 소망이 감지되었으면 하고 바라는건, 그 비판이 나온 배경에는 비판자가 바라는 그 무언가가 있다라는 걸 느끼고 싶다는 거에요. 비판은 소망하는 상태를 실현해가는 긴 과정의 초기상태라고 생각해요. 초기상태에서 후기상태를 기대할 수는 없는거니까요. 그 비판자가 괴리에 대해 계속 얘기하고 고민한다면 그것이 나중에는 대안을 얘기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해요.

 

이누엔도가 기만과 조작을 위한 권력적 언술의 기술적인 방법론을 이야기한다면, '거짓을 숨기기 위한 진실'의 문제는 권력적 언술의 자기 해체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 여기에서 권력적 언술의 자기해체 가능성이라고 하면, 자기해체는 (악용된) 진실이 거짓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는 건가요? 아~ 복잡합니다~

 

기만을 위해 종사하는 진실은 어떻게 스스로의 회로 속에 들어가 그 진실로 위장된 기만의 성채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일까?

 

=> 이 성채를 깨뜨릴 수 있는 주체는 수용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범죄자, 범죄행위를 했다는 사실, 범죄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진술, 그리고 듣는자, 이렇게 범죄자, 행위 사실, 진술, 듣는자가 있다고 할 때, 범죄자는 진술을 수단화시키지만 듣는자가 범죄자의 진술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범죄자가 하는 진술 자체가 행위 사실을 드러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듣는자가 신호를 해석하는 능력을 더 많이 갖출수록 듣는자는 수단화된 범죄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지 않고 행위 사실을 알아낼 수 있겠지요.

 

서로에게 투사하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소망을, 대화를 서로에게 투사해볼 뿐이다.

 

=> 투사란 말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몰라서 좀 찾아보았습니다. 한글로 검색하니 투사부일체가 쭉 뜨네요. ^^;  영어로 아마 psychological projection이 제가 알려는 그 '투사'일 것 같네요..

 

http://en.wikipedia.org/wiki/Psychological_projection

Psychological projection is the unconscious act of denial of a person's own attributes, thoughts, and emotions, which are then ascribed to the outside world, such as to the weather, the government, a tool, or to other people. Thus, it involves imagining or projecting that others have the same feelings or motives, rather than what they really think. (심리적인 투사란 한 사람의 고유한 특징, 생각,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부정하는 것. 이렇게 부정하는 것은 그 원인을 외부에 돌리는 것, 이를테면 날씨나 정부, 도구나 다른 사람이라든지. 이는 다른 사람이 실제로 생각이 아니라, 나와 같은 감정,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상상하는 결과를 낳는다.)

 

=> ^^: 흠, 잘 이해가 안되서 한글로 다시 찾아봤어요.

 

http://100.naver.com/100.nhn?docid=156147

 4. 다른 사람들도 나의 태도나 감정 등과 똑같은 것을 가졌다고 단정하려 드는 경향.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또 자기 자신이 납득하기 어려운 사고(思考), 감정이나 만족할 수 없는 욕구를 갖고 있는 경우에 그것을 타인에게 돌려 버리는 것과 같은 무의식적인 마음의 움직임이다. 이것은 방위기제(防衛機制)의 한 가지로 동일시(同一視)의 한 형(型)이다.

 

=> 역시나 개념이 잘 이해가 안되네요. "납득하기 어려운 사고 등을 갖고 있는 경우에 그것을 타인에게 돌려버리는 것과 같은 무의식적인 마음의 움직임" 부분이요. 다른 설명글을 읽어 봐야겠습니다. 서로에게 각자의 소망을, 대화를 투사해볼 뿐이라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요.


이누엔도 2. Gatorlog의 글을 읽으면서

이누엔도 1에 이어서..

이누엔도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글에서 민노씨.네 블로그에서 안내된 Gatorlog블로그의 글 두 개를 읽어 보았다. 역시나 조금 어려워서 정리하면서 읽었다. 대부분은 원래 글에서 약간 간단하게 옮겨쓴 글이고, 내 생각을 쓴 부분만 파란색으로 표시했다.

 

이누엔도(Innuendo) 1. (@gatorlog)http://bit.ly/d2WofU 
발화자의 부정적 편견을 우회적으로 은연중 독자/청자에게 내면화시키는 지적(수사적) 조작.
"선장은 오늘 하루 술에 취해 있지 않았다"

이누엔도(Innuendo) 2. (@gatorlog)http://bit.ly/cR19Wv 
1. "의미의 단언적 전달을 제한하는 척하면서 애초 의도한 의미를 그대로 전달"
2. "사람을 간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직접적인 공격만큼 효과가 있다"

 

  1. 왜 Marmot의 블로그를 읽는 것이 조선 일보를 읽는 것보다 정신 건강에 해로울까?
    ->  이는 둘다 해롭다는 두가지 가치 기준을 암묵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낳는다.

  2. 이누엔도(innuendo) : 우리가 판단해야 할 대상에 대해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구렁이 담 넘는 식으로 둘러쳐서 뒷통수 때리는 수사적 기법

  3. 이누엔도가 쓰이는 경우 - 언론보도, 정치인들의 이전투구, 보통 사람들
    => 이전투구가 무슨 뜻일까?
    이전투구 : 자기 이익을 위해서 볼썽사납게 싸우는 것을 비유

    http://100.naver.com/100.nhn?docid=799122

  4. 보통사람이 쓴 이누엔도의 예:
    "선장은 오늘 하루는 술에 취해 있지 않았다."
     -> 오늘 말고 다른 날은 계속 취해 있다는 숨겨진 비방을 암묵적으로 나타냄

  5. 이누엔도를 쓰는 주된 이유 : 사실 관계를 확인시키기 어려운 인신 공격에 주로 쓰인다.

  6. 이누엔도의 특징 : 하나의 "진술문"을 평가어나 평가구문 속에 숨겨 전달한다.
    => 인물과 사상 2010년 2월호에서 읽은 부분이 생각난다. "우리는 공산권밑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무슨 얘기를 하건 선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행간의 의미를 읽는 법을 배웠다." 어떤 말을 듣거나 글을 읽는 사람들이 비판적으로 행간의 의미를 읽으려고 하지 않을때 이누엔도가 판을 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누엔도에 드러나 있는 단언적 진술을 인식할 수록 이누엔도 수법은 힘을 잃지 않을까?

  7. 이누엔도를 잘 쓰는 한국 신문 - 조선일보
    => 그래서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비판하기 때문에 무조건 조선일보를 욕할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가 이누엔도 수법을 써서 비겁한 방식으로 어떤 얘기를 하는지를 인식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8. 이누엔도를 쓰는 이유 : 사실 확인을 해줄 책임이 없다.
    북한 관련 숱한 이누엔도 캠페인을 통해 언론보도에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순진한" 독자들에게 "김대중은 빨갱이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음으로 양으로 큰 공헌을 했다.
    => 이누엔도를 쓰는 이유는 비겁함 때문이구나. 뭔가를 말하려면 용기있게 하고자 하는 바를 말해야 겠다. 이누엔도를 쓰지 말고 명확한 진술문으로 전달하자. 이누엔도를 쓰는 사람, 이누엔도를 사용해서 글을 쓴 경우에는 그 이면에 있는 의미를 읽어내자.

  9. 이누엔도를 쓰려면 최소한 지적 수준이 있어야 한다.

  10. 구문기억(sentence memory)에 관한 실험 : 단순형태의 문장으로 유추해서 해석하고 기억한다. 논리적 함축의미, 실용적 함축의미
    ㄱ. 논리적 함축의미 : A가 길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B가 짧았다고 유추함.
    ㄴ. 실용적 함축의미 : 못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면 망치를 썼다고 유추함. (실질적으로 못을 박는데는 망치가 사용되니까)
    => 정말 흥미로운 실험이다!

  11. 이누엔도의 두 가지 구성요소...
    ㄱ. 단언적인 진술문 <- 행간의 의미라고 불리는 그 의미? 원래 드러내고자 하는 생각. 대놓고는 말 못하는
    ㄴ. 이 진술문을 간접적인 뉘앙스로 바꿔주는 한정어, 한정구문 <- 진술문을 숨겨주는 역할, 의문문 등..

  12. 이누엔도의 문제 : 의미의 단언적 전달을 제한하는 척 하면서, 애초의도한 의미를 그대로 전달한다는 데 있다.
    => 이런 비겁한 이누엔도를 봤나. 실용적 함축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사고능력이 이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리고 교육은 사고능력에 영향을 미치고. 이누엔도를 사용하더라도 듣는 이가 행간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면 이누엔도를 사용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영어공부에 대한 생각

 

영어공부에 대해 드는 짧은 생각들을 편하게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 포스트는 수시로 업데이트 되다가 별도의 포스트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

 

1. 영어독해

 

영어독해 위주로 공부해서 말하기가 잘 안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 말을 이렇게 바꿔야 하지 않을까. 

영어독해, 문제집 위주로 공부해서 영어독해 점수는 잘 나와요. (그런데 영어책은 잘 안 읽혀요.)

 

사지선다형 문제에 답하기 위한 목적으로 토막난 글을 읽으면서 대화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무엇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글의 주제와 글쓴이의 입장 등 글에 대해서 묻는 독해문제를 푸는 것보다, 글에서 글쓴이의 목소리를 직접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2. 영어로 재미있는 글을 읽는 즐거움

요즘 영어독해 관련해서 몇몇 분들께 피드백을 드리고 있다. 나 스스로도 영어독해를 잘해야 할 것 같아서 영어로 된 글이나 책을 읽고 있다. 영어독해실력을 늘리려고 시작한 일이지만 글을 읽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낀다. Understanding of international conflicts라는 책에서는 중동지역 분쟁에 대해서 읽다가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읽은 부분이 참 흥미로웠다. 당연히 여겨지는 민족, 민족이라고 칭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아프리카의 경우처럼 종교와 부족, 언어 등이 다양한 곳에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민족이라 칭하고, 그 민족에 기반한 국가를 세워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해 책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기억에 대략 의존한 것에 의하면..) 

식민시대가 끝나고, 지역의 식민저항주의자들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데, 종교나 부족 단위로 국가를 세우자니, 식민시대에 건설되었던 여러가지 것들 - 경찰, 세금, 행정 등 -을 그대로 쓸 수가 없더라. 결국은 식민통치했던 국가들이 마음대로 그었던 그 경계를 살려서 국가를 세우게 되었고 그것이 지속적인 분쟁의 원인을 제공한다. 

 

그동안 영어를 공부한다고만 생각했지, 영어로 내용이 재미있는 글을 읽겠다는 생각을 별로 못했던 것 같다. 영어 문장을 보면 주어와 동사를 찾는 등 해부하는 마음이 앞섰지, 이 글을 쓴 이가 어떤 생각을 나누고 싶은지 공감하고자 하는 노력은 적었던 것 같다. 요즘 트위터에서 흥미로운 글, 또는 책을 소개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예를 들면 @gatorlog, @in_future, @aleph_k 등) 이런 글들을 읽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던 과거의 나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어로 재미있는 글을 찾아 읽지 않았던 나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3. 공부를 하는데 매순간 둘이 있어야

학교를 벗어나는 나이가 되면 공부는 왠지 혼자서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영어실력이 아쉬운 분들께 혼자서 하기 좋은 공부는 독해일 거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혼자할 수 있는 공부는 사실 없다고 생각한다. 매순간 적어도 둘은 있어야 한다. 단지 학교에서처럼 한 반에 몇십 명이서, 또는 학원에서처럼 몇 명이서 그룹을 만들지 않더라도 공부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1대 다가 되기 쉬운 그 구성이 나는 별로다. 둘은 나와 내가 될 수도 있고, 나와 남이 될 수도 있다. 나와 글쓴이가 될 수도 있고, 나와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 공부의 기본적인 속성은 묻고 답하는 대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 자체라고 생각한다. 서로 강요하지 않고, 서로의 질문과 대답에 마음을 열었을 때에만 대화가 이루어진다. 배우는 이가 영어 문장을 해석하면서 나와 글쓴이의 대화를 하고 나면, 그 해석한 내용을 보고 나는 배운 이와 대화한다. 이렇게 이해하셨군요, 이 부분이 애매하셨군요, 이 부분은 잘 하셨군요. 소리내지 않지만, 소리내고 싶은 부분은 피드백으로 쓴다. 아마도 그 피드백을 읽으면서 배우는 이는 나와 대화한다고 느끼지 않을까?

 

4. 언어를 배우는데 엄마가 중요한 이유

 

언어를 배우는데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자아가 언제 생겨나는지, 자신과의 대화를 하기 시작하는 게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와 언어적인 또는 비언어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 이전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대화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려주는 존재다. 물론 엄마라고 꼭 여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갓난아기일 때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사람, 그 사람이 엄마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5. 영어공부 - 개인 피드백을 드리는 이유

 

개발자 영어, My Second Languages 등을 진행하면서 개인 피드백을 드리는 이유가 있다. 물론 내가 배우는 경우는 나도 개인 피드백을 받고 있다. 언어 공부에서 중요한 점 하나는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듯말듯 하던 것을 '아! 이렇게 되는구나!'하고 알게 되는 그 지점. 그 지점이 너무 많아서도 안되고 너무 적어서도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효율이 떨어지면 곧 지루해지고 지루해지면 배움을 멈추는 것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리고 그 '인식'이라는 지점이 생기려면 배우는 이가 무언가를 궁금해 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그 궁금함에 답해주는 이가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 개인 피드백의 장점이 있다. 배우는 이가 해석을 한 내용을 보면 어떤 부분은 잘 이해했는지, 어떤 부분은 애매하다고 느꼈는지가 드러난다. 그것을 보고, 애매해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만 설명을 해주는 게 개인 피드백의 강점이다. 내가 잘 아는 것을 누가 설명하면 나는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내가 인내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본성일 수도 있다. 내가 잘 아는 것을 누가 설명하면 그것은 시간낭비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시간에 내가 알고 싶은 것에 대한 설명을 읽거나 듣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6. 내가 일본어를 공부하는 이유, 내가 간과했던 피드백의 또다른 역할

 

한 가지는 한국어가 모국어이면 일본어를 배우기 더 수월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다. 한국인들이 유럽어 사용자보다 일본어를 더 빨리 배운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즉 나에게 강점이 있는데, 그것을 활용하지 않는게 아까워서 일본어를 배운다. 물론 배우다보면 이거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겁도 난다. 하지만 어느 시간 안에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당위가 없기 때문에 편하게 한발 한발 가고 있다.

 

또 하나는 외국어를 배우는 입장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최근에 일본어를 잘하시는 분에게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방식은 내가 개발자 영어 진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분에게서 피드백을 받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피드백을 드릴 때에는, 배우는 이가 잘 모르는 부분만을 골라서 피드백을 드렸다. 잘 아시는 부분은 굳이 설명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넘어갔다. 그게 시간 면에서도 노력 면에서도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받은 피드백은 약간 달랐다. 내가 맞게 해석한 것에 대해서 "correct!", "맞아!", "정확해", "잘했어", 이런 글들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참 기분이 좋았다. 어릴 때 숙제를 해갔는데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기분도 떠오르고. 물론 몰라서 해석을 잘못한 것에 대한 설명을 읽고 옮겨 적다보면 알게 되는 것이 많다. 그게 내가 중요시했던 피드백의 역할이기도 했다. 그런데 중간중간에 '잘했어!', '정확해!' 라는 문구를 보면 왠지 모를 힘이 났다. 잘한 것을 잘했다고 얘기해주는 긍정적인 피드백의 역할을 내가 간과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피드백을 드릴 때, 애매하다고 느끼는 부분에만 피드백을 드리지 않고, 정확하게 해석한 부분에 대해서는 '맞아요!', '정확하게 해석하셨어요!' 등의 문구를 쓴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